신작시

사과의 멀미- 김송포

songpo 2016. 1. 2. 22:27

 

사과의 멀미

 

날마다 담벼락 높은 집을 기웃거린 새가 있다

입을 오므리고 똥구멍을 들고 발톱으로 머리를 긁었다

뇌의 바퀴를 굴리며 헛발질 한다

유리를 자주 찍으면 살이 부서질까

먹이라도 던져주면 창에 지직해 놓고

미끼를 던져 놓은 주머니,

낱알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얕은 심지로 불을 밝히려 정수리에 기름을 부었다

거짓이 솟아 나는가하면 다시 혼탁해진 우물,

 

가다 지친 길에 쉼표를 찍고

계단식 탑에 힘을 빼고 걸어 다닌다

문 밖에서 붓으로 그려진 집을 그윽하게 본다

손을 내밀어 보고

벽에 머리를 박는 일이 허다한 날들,

곰팡이 핀 골방에서

무릎보다 더 낮게 엎드려 바닥을 갈았다

바람과 바람 사이 퍼덕거리며 가던 새는

누추한 집에 비가 새는 줄 모르고 들락거려

토사를 하고,

뱃속을 텅 텅 비운다

 

 

 

 기침과 콧물 사이

 

 

무심하게 흘러간 너는 여름을 보내고

파도와 바람을 이겨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손도 발도 떨림도 다 가졌거늘

한파의 기침쯤이야

수십 년 해초와 바위와 부딪치며 이겨낸

굴 껍데기처럼 단단해져

겨울과 맞서 싸우는 것은 식은 커피 마시는 일과 같은 것,

바다가 깊어 파고드는 쇳소리라 치자

순간 정적을 깨는 소리일뿐

잠시 눈 한번 크게 뜨고 놀랐다 치자

바닷물은 언제든 밀려들다 사라지는 것 일뿐

콧물이 주책없이 흐르면 닦는 것처럼

너를 뒤돌아볼 일,

,

어느 세월에 저 많은 열이 철철 거리고 있던가

아직도 부드러운 잇몸으로 넘어가고 있는가

흘러서는 안 될 소리가 환절기에 강물로 바다로 넘쳐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사라져도 무디어질,

무심한 듯 고결한 듯 헤픈 듯 거리로 나온 말들이

용케 너와 나 사이사이를 뛰어 가고 있다

 

 

 

, , 돌의 사연

 

 

 

멈추어 있는 돌에 바퀴를 달았다

이름 없는 돌에 문패를 달아 내 무덤에 걸고 싶었다

산모롱이에 돌을 쌓아 햇볕 드는 숲으로 조금만 비켜 달라 빌까

길섶 사이에서 잠들고 싶어 함을 알았다

강물 깊은 곳에 길 잃은 돌멩이가 모래 밑에 눌러져 시름시름 앓고 있다

어머니 가신 줄 모르고

개구쟁이들은 비석치기 놀이에 쾌변을 놓은 것처럼 웃고 있다

섬에 정박한 어머니는 절벽에서 배고플까 굽어보고

낙석에 몸을 베인 그믐달이 쓸개 안에 박혀 있다

구르다 지쳐 깎인 돌이 나의 쓸개에서 굴러다닌다


뿌리의 본적


경남 하동 악양면 축지리 아미산 중턱에

육백 년 된 소나무가 바위에 뿌리를 숨기고 장승처럼 서 있다
무슨 억장이 무너지길래 본적을 감추고 대지를 향해 부르짖을까
고향은 어디에 있지
나의 씨를 찾지 마 들추고 싶지 않은 계보도 있는 거야
조상이 누구냐고 거슬러 올라가지 마

나가 되고 싶은 거야
자수성가해서 이만큼 굳건하게 서 있으면 되었지

서자든 사생아든 다리 밑에서 주운 아이든 나의 밑을 보려고 하지 마
이 나무 저 나무 그 뿌리 파 보면 잘 난 것 없고 못날 것도 없어
너의 피라고 하얗기만 할 것 같니 나의 피라고 검을 것 같니
혼자 이만큼 이루었으면 누가 함부로 짓밟겠니
바위 밑의 누런 족보를 누가 들추어내겠니
아파서 아파서
커다란 돌로 눌러 놓으면 비밀이 새지 않을 것 같았지
뿌리를 보고 싶거든 내 목이나 만지다 가려무나
관능적인 목덜미라고
검은 구름도 한 번씩 굽어보고 간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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