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오, 행복하여라/ 이승희

songpo 2016. 4. 29. 13:23

오, 행복하여라/ 이승희

 

외로움은 나의 밥, 찬 없이도 먹을 나의 끼니, 내 소망은

세 끼 밥과 야식까지 골고루 야무지게 잘 챙겨 먹는 것, 외로

움으로 살찌는 일, 그리하여 외로움 하나 만으로 나 풍성해지

는 거짓말 같은 생, 나 이제 외로움의 식구를 얻었으니 함께

먹고 또 먹어 배 터져 죽고 싶다. 버석거리던 날들이 외로움의

독을 입어 이리도 촉촉하니 축복받음 아닌가. 날마다 독이 퍼져

이 저녁의 숨소리 그윽하구나, 외로움이 서 있는 그 자리.

거긴 원래 미루나무가 오래 서 있던 자리, 내 딸이 날마다

학교 가던 길, 지치고 아플 때 하염없이 집을 바라보던 길.

오늘도 집나간 마음은 기별없으니 기다림으로 접혀진 마음자리는

쉼게 찢어지고, 마음 없어도 몸은 자주 아프고, 마음 없이 병든 몸은

가난한 세간 옆에서 쓰러져 잠들고, 그리운 것도 없이 살 수 있다니,

오 놀라워라 거짓말 같은 나의 생이여.

 

 

 

 

 

 

 

 

 

 

 

 

시감상

 

'재능은 고독 속에 이루어지며, 인격은 세파 속에서 이루어진다'-괴테의 말을 되새겨봅니다.

 

인간에게 근원적 외로움이라는 것은

곁에 누군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있을 때 배가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할 수 없음 고독 속으로 깊이 들어가 온전히 즐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외로움으로 살찌는 일을 소망이라 표현했나 봅니다.

외로움 하나 만으로 풍성해지는 거짓말 같은 생,

나 이제 외로움의 식구를 얻었으니 함께 먹고 또 먹어 배 터져 죽고 싶다라고 다짐합니다.

고독을 스스로 즐기지 않는다면 고독의 참 맛을 모른다고 누군가 말했다지요.

궁극에는 그리운 것도 없이 살 수 있다니, 참으로 생은 놀라운 것일까요?

 

거짓말같은 생! 진술과 아이러니의 어울림이 매력적인 시!라는 생각.

아침을 밝혀주는 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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