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보이는 아침
김소연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시집『수학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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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먼지는 한 생이 다하여 한 몸의 형체가 부서지고 마침내 분해되어 각자의 길을 떠도는 최후의 입자라고 하겠다. 그러니 ‘먼지가 보이는 아침’이란 내 생애의 끝에 가닿는 느낌이며 다음 생의 시작을 떠올려보는 시간이리라. 지금은 더위의 계절이다. 매미울음소리 사방으로 번지고 있다. 태양은 기를 쓰고 열기를 퍼붓고, 지붕은 납작 엎드린 채 소리와 열기를 받아낸다. 길은, 풀은, 나무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더위라는 욕망을 견뎌내고 있다. 곧 처서가 올 것이고, 더위는 결국 물러가고 햇빛의 각도는 차츰 사선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 어쩌면 유순해진 햇빛에 놀라 ‘조용히 조용을 다하’는 자의 시선에 잡히는, 아직 길을 찾지 못한 먼지를 만난다면 서로 쓸쓸한 목례라도 건넬 일이다.
이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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