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도둑 (외 1편)
황상순
보석은 진열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해 지심도 동백나무 울울창창한 섬
붉은 빛깔의 화려한 보석들이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땅에도 지천으로 떨어져 뒹구는 보석, 보석들
동백꽃보석 홍매화보석
바다 한가득 반짝이는 은빛 물결보석
이걸 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장승포에 돌아가는 배를 놓쳐 버리고
별보석 총총 떠오르도록 내내 섬에 갇혀 있다.
남의 혼삿길을 막는 교묘한 방법
노시인의 평창 금당계곡 자택에 들른 어느 여류시인이
혼자 사시는 노인네 집 걸레가
자기네 집 행주보다 더 깨끗하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혼삿길 막혀 이제 장가가긴 다 글렀다고
여든 여섯 살 시인은 크게 낙담하고 계셨다
내년 봄 다시 이 집을 방문할 즈음엔
아마도 그 여우같은 여자분께서
배시시 웃으며 대문을 열어주지 않겠나, 싶다.
—시집『오래된 약속』(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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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순 / 1954년 강원도 평창 봉평 출생. 1999년 《시문학》등단. 시집『어름치 사랑』『사과벌레의 여행』『농담』『오래된 약속』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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