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걱정인형 / 김명은

songpo 2017. 4. 23. 10:21

 

걱정인형

 

 

김명은

 

선물을 받았다 여섯 개의 걱정인형

마야 인디언들은 걱정으로 잠 못 이룰 때 인형들을 베개에 넣어두고 자면 걱정을 가져가 준다고 믿었다 믿을지 말지 고민하지 않는다 믿는 대로 된다고 믿는다

 

나는 해보다 달빛을 더 오래 쳐다보았다 달이 없다면 내 마음은 움직이지 못하고 기러기는 돌아오지 못하지 밤낮 먹지도 못하고 날아온 새 떼가 죽었다 눈 내리는데 꽃이 핀다 문자를 날리면 당신은 부재중

 

달에게 빼앗은 바다를 좋아해서 돌려주지 않았다 붉은 열차의 신음소리는 왜 푸르게 보였을까 다람쥐가 들고 있는 석류는 좌우로 벌어지나 위아래로 벌어지긴 벌어지나 딱딱해지나 녹슨 혀끝으로 하루를 여는 창문은 왜 반짝일까

 

분노는 행복일까요 불행일까요 다행이에요 땅으로 내려와요 양팔을 벌렸는데 착지점이 없다

 

공기방울은 꼭두새벽부터 왜 말문이 막히나 말 많은 내 친구가 말없는 내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기러기는 화가 나면 목 깃털이 떨린다 입술로 건너뛰던 말이 입 안에서 허우적거린다 귀가 말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오 분, 오 분이 지나면 말은 아무렇게나 구겨진다

 

슬프지 않은데 자꾸 눈물이 나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왼쪽 어깨로 기울어진 내 뜨거운 연애, 촛농이 흘러내릴까 봐 불안했던 손가락들 검은 안대 위에 꽃가루와 깃털을 올려 봐

 

굽이쳐 들어갔으니 굽이쳐 나오면 되나 물속에서 물 위로

낙화유수인지 눈물방울이 세모인지 네모인지 걱정은 잠시 인형에게 맡기고

수면양말을 신으면 보이지 않는 발자국

걱정을 내게 맡긴 인형들이 모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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