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외곽 /오정국
커브를 돌면 저절로 풀리는 핸들처럼
숲이 일렁거렸다 숲은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머뭇거리고 설레며
고개를 숙인 채
문득문득 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루었고
납골당 유치 결사반대 현수막이
숲의 외곽을 이루었다
숲은
저의 가슴에 무수한 무덤을 품고도
그 놀라움을 표하지 않았고
오줌버캐처럼 허연 밤꽃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몇 가닥의 밧줄이
터널 속으로 사라지듯
숲길은 끝없고, 끝없이 움직여서
저녁 빛이 환했다
잠자코 저의 발등을 내려다보는
나무들, 언어의 매혹에 붙들린
시인들 같았다 불탄 숲의
공터를 지키는
침묵의 흙덩어리들, 끝끝내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 거기까지 가서
이 몸 하나
통나무 불길로 타오르고 싶었는데
굴삭기의 삽날 자국이 번쩍 거렸다
천막처럼 내려앉는
숲의 외벽들, 가까스로
어둑한 숲길을 빠져나올 때,
숲은
멸종된 공룡처럼
강 건너 불빛을 굽어보고 있었디
공룡의 멸종을 지켜본
나무, 낙우송과(科) 삼나무속(屬)도 섞여 있었다
'시 너머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용미의「나의 몸속에는」감상 / 박성우 (0) | 2017.05.02 |
---|---|
양애경의 「장미의 날」감상 / 서정임 (0) | 2017.04.30 |
섬/ 오은 (0) | 2017.04.24 |
흥미로운 일 / 이수명 (0) | 2017.04.23 |
걱정인형 / 김명은 (0) | 2017.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