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을 돌다가
김송포
다리가 문어처럼 놓여 있다
다리만 몇 번씩 건너며 섬을 오고 간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인연,
섬 주민들이 육지를 넘나들며 불편이 없을 것이라 믿었다
다리를 건너고 나면 또 다리가 있어 아픔만큼 걸쳐 있다
바다에 점 하나 박혀 물감 찍어놓은 듯 떠돌다가
내 다리는 어디 가고 네 다리만 길어 쓰라림만 피고 지는걸까
삼십 년 전에 사놓은 땅은 잔풀만 무성하고
다리가 놓인다면 부자가 될 거라고
원망의 다리라며 울부짖는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저 잊어버리고 살라고
천만다행이라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풀밭의 증거를 지우기 위해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넌다
시작노트:
섬에 다리가 놓인다고 땅을 사라고 부추긴다. 바닷속에 먹을거리가 많아 더블이란다. 섬에 사는 사람은 굴, 조개, 미역은 바다의 꿀이지만 밀물이 들어올 때 바구니는 비어 있다. 바다 가운데 김 양식 한 다발 뿌려 놓고 가난을 이겨 보려고 바다에 들어갔지만 여덟 식구 입은 가난했다. 외부인의 농간에 밭 몇 고랑 팔아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공사가 시작된다. 부자가 되어 팔자가 펴진다고 선전만 요란하다. 다리는 더디게 십 수 년 기다려야 했다. 아이 학비로 쓰이기 위해 땅을 넘기고 싶었다. 그러나 바다와 육지에 다리가 놓이는 날, 마냥 부자가 될 거라고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결국 섬과 섬 사이에 다리는 놓였지만 맹지의 땅에 풀밭만 무성하다 (김송포 시인)
---2020.5.19일자 <울산광역매일 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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