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신은 각을 들여다본다
김송포
가지런하게 꽂혀 있다는 것은 닫혀 있다는 것
모서리가 흐트러져
자유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던 날이 있었다
낡은 물건을 버리면서 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없어도 될 목차를 여태 안고 살았던 것
아주
조금만
극히
소량만 먹어도 고프지 않을 만큼 지니고 살아야 할 것들이다
눈을 뜨면 보이기 시작하는 목록
서랍 속의 각을 살려야 한다는 눈이 생긴 것이다
두서없는 나열의 각도가 시선을 끌고
기억발전소의 무게가 중심을 무너뜨렸어
책받침 대가
잠시 본분을 망각한 것
호흡을 가다듬고
살아 있는 글자를 먹어야 해
신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잊고 무엇을 얻는다는 것인지
동그라미를 굴려
각을 지우고
먼지와 선을 긋고
의자를 짓무르게 할 시간을 찾던 중
정리의 신은 각을 구부려 문장을 들여다본다
--2020. <열린시학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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