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새얼 문집

songpo 2014. 5. 7. 18:34

-뚱딴지 

 

                                              김송포

 

                                               

평택호 옆에 줄지어 늘어선 국화의 사촌이

서쪽 바람맞으며 실실 웃고 있다

호수로 걸어가던 사내는

여인에게 주어야 한다며 호미로 땅을 긁어대자

알맹이가 줄줄이 달려 나온다

 

어,

흙 속에서 헛소리들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하네

이게 뭐지

거짓부렁이야

그동안 누르고 살아온 혹이

툭, 불거져 나온 거야

엉뚱하게 돼지가 먹으면 아깝지 않을 감자는

땅속에서 세상을 엿듣고 있었던 거야

 

여기저기 파고 또 파도 튀어나오는 구호가

공약남발 하듯 중얼거리고 있다

이 땅에 속고 속아 넘어 간 사람은 말똥구리처럼 잘살고

개털로 웃겨야 하는 일이 많아

진실은 구덩이에서 꺼내고 거짓은 꽃으로 가려주고

수작은 걸레로 닦아야 해

 

겨울호수에 물이 얼어붙었다

 

얼음 밑으로 흐르는 헛소리는 더 크게 왕왕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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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열쇠를 잃어버린다

 

허둥지둥 가게와 스포츠센터와 버스 타던 곳을 두리번거리며 오던 길 간다

 

열쇠는 문을 잃고 구멍을 잃고 어미를 잃고,

 

습관처럼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문에 맞는 구멍을 찾아가기 바쁜 날들,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어가며 뛰어다녔다

 

밟힌 열쇠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전락하고 왔던 길 찾아갔을 때

그 자리에 잃어버린 기억이 덩그러니 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날

구석에서 잘려나간 손톱처럼 안에서 놀던 아이 세상으로 나가기 전,

태아의 핏덩이가 지워진 적 있었다

아이는 있었고 나중에는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잊고 살았다

 

존재는 있다가 없다가 사라지는 것,

 

지나간 시간 다시 들여다보았을 때 

잃어버린 것은 열쇠가 아니라 나의 구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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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고흐가 내게로 온다

어둠에서 짖어대는 소리를 듣기 위해 내게로 온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와

랭보의 사나이가 우는 소리

골방에서 이력서 구기는 소리

비 오는 도로의 타이어 질주하는 소리

강풍이 문 두드리며 탄원하는 소리

 

이 문들을 닫고 백지에 붓을 칠하는

당신의 귀는 안락하십니까

 

작은 소리에 솔깃하여 초침을 타고 

상여 메고 곡하는 상주를 따르던 소리가 쟁쟁하듯

당나귀를 사랑한 백석이 한밤에 손의 도구로 오지 않을까

 

찬바람 불면 매미가 사력을 다해 날개 부딪치듯 

지하 계단에서 동전 그릇 내미는 노숙자가

백 원인지 오백 원인지 소리에 민감한 귀를 비비지 않을까

 

수런거리는 지구의 바퀴를 굴리고 사는

이 모든 웅얼거림을 닫고, 편안하십니까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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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잇몸은 이와 사랑을 

 

 

뿌리를 만지작거리며 잠을 설친다

나무 속에 침을 넣어 수액을 빨아들인다

곳곳에 자국을 남기며 

사이사이 건너 갈 기나 긴 물림이다

절구는 부풀어 오른 살을 향하여 밀려 나고

물이 차 오른 곳에서 유영하다 간지럽힌 그의 이,

놓을 수 없는 외침이다

오래도록 엉켜 살던 거미처럼 줄을 풀어 헤치고

붉은 열대야의 빛은 물들어간다

화살을 쏘고 과녁을 향하여 울부짖은 엇갈린 운명,

뼈 없이 골짜기만 헤매다 계곡에서 빠져 나와

갈 곳을 잃어버린 분홍빛 눈물,

아직 치러야 할 아귀

앙, 이별을 다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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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암사 맷돌   

 

뱀이 사는 절인가 했습니다

바위가 비석처럼 생겼다는 뜻인가 했습니다

마당에 맷돌로 된 징검다리 놓여있습니다

맷돌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는 지

큰 맷돌 수십 개 가지런히 있습니다

맷돌이 느티나무와 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맷돌로 인해서

고즈넉이 앉아있는 절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맷돌 구멍 사이로 풀이 돋아났습니다

햇빛이 맷돌 구멍 사이에 머물다 갔습니다

보고 있는 것들이

어떤 꿈 속인지

어떤 풍경인지

어떤 맷돌인지

뱀과 바위와 맷돌이 절 마당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과

부처가 왜 왼손을 들고 있는지

내가 왜 그 자리에 있는 지

염불을 하라는 건지

맷돌을 돌리라는 건지

나도 모르는 일들을 맷돌은 알고 있다는 듯 웃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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