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실

사기그릇

songpo 2013. 5. 10. 18:51

그릇의 허무 

                                                      김송포


앞치마 두르고 쌀을 씻어 솥에 안친다
몇 달 동안
무같은 허무를 들고 나는 쩔쩔 매었다
허무로 리모컨을 누르고 허무로 가방을 고르고
허무로 옷을 입었다
허무에 갇힌 침대에 뒹굴어 빈둥거렸다
헛되고 헛되어서 헛되었다

누군가 있어야 한다
입안에서 샌드위치를 몇 번 씹어 넘기는 지 
음식물 몇 번 꼭꼭 씹어 삼키는 지
연동운동은 몇 번이 적당한 지 알아야 한다

나는 그 누구를 찾아갔다
그가 담는 김치에 청각을 넣을까 황석어젓을 넣을까
그가 장을 담을 때 물은 어느 정도 넣는 지
햇빛을 얼마나 쏘이는 지 
 
나는 집에 핀 꽃을 따서
사기그릇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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