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박시하
한 마리 버려진 개로서
교회당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 적이 있다
빗줄기 사이에서
무언가 희게 펄럭인 걸 기억한다
발은 꺾였고 눈은 멀었는데
어찌 볼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교회당 그늘에서 숨죽인
타락한 천사였다
이제는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것을
너무도 사랑하여 벌을 받았다
지상의 것
더럽고 추악했을 텐데
어찌 사랑했을까
개의 멀어버린 눈 속에
깃들어 푸르른 죄악
사랑했으니
인간으로 태어남이 마땅했을 것이다
⸻월간 《시인동네》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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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하 / 1972년 서울 출생. 2008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눈사람의 사회』『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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