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되는 포도
반성문을 자진해서 쓰고 또 써도 결국은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너를 심하게 다룬 거 미안해
내일이 되면 좀더 개선된 반성문을 제출하겠지만 너는 어제의 나라서 우리의 반성문은 나보다 조금 용감한 화자의 것일 뿐
귀가하는 또래들의 어깨를 건드리고 도망치는 아이의 쓸쓸한 종아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띄어쓰기를 하기 어려운 말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줄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나
서로 조금씩은 다른 이파리의 색을 초록이라고 뭉뚱그려 말할 때의 이상한 기분을 나눠 가질 때는
너와 나
둘이서 충분했지
이젠 집으로 돌아가 일렬로 늘어선 무릎이 싫증나서 그랬다고 뉘우치면 너는 동그란 무릎이 되고 이제 행복하게 모인 식구들이 용서하겠다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끄덕이며 포도를 먹다가
중요한 걸 나무 아래 놓고 와서 깜작 놀라고
한 번 더 얼굴을 보려고 밤마다 뒤통수를 버리는 밤은 괜찮니?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시작되는 아침에 너와 나의 반성문은 다 읽히고 너는 너를 용서하고 나는 나를 용서하고 우리를 용서한 사람들을 용서하기 시작하면서 왜 잘못을 저질렀는지 다 잊고 나면 포도를 껍질째 먹을 때와 알맹이만 빼 먹을 때 어느 게 더 안전하지? 그런 질문에 답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미래를 끌어다 쓰기 위해 약속을 하고 우리는 미래보다 먼저 망가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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