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머 시

블라인드 /이은심

songpo 2019. 10. 5. 21:54


블라인드




   오래된 철자법은 까마득한 성운에 사는 새를 검색하지 못한다

  

  지난여름

  닦으면 더욱 뚜렷해지는 빗속에서 수많은 당신이 지워져 나가고 당신과 나의 계절은 주인을 섬기지 못했다 지붕 없는 집 아래 뼈만 남은

  

  바다를 쓸어 덮는 불법체류자

  슬픔의 탕을 끓여 제를 올리던 당신은 혹시 나 아닌 나, 제목만 붙은 플래카드였을지 모른다

 

  찾고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없다고 정말로 믿으면 손금이 손등을 뚫고 자라 나왔다 꿈과 손금의 방향이 달라 두 집 살림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였다

 

  그만둔 고백처럼 나는 뒤를 바라본다 한때 관계는 숲처럼 반복되고 재발하였으나 웃음과 울음은 거기서 거기라고 당신은 옆을 지웠고

 

  두꺼운 발 냄새와 일방적인 등등의 식사

  내가 아닌 꽃 꽃이 아닌 올리브는 당신이 키우고 석류의 신맛은 내가 거두었다


  유사어로 검색하시겠습니까


  참과 거짓이 힘을 다해 어긋날 때마다 주위를 끝없이 배회하는 감기처럼 빵을 벌고 빵을 자를 칼을 사던 한쪽 어깨만으로


  별, 천 년을 피곤한 등불이라니

 

  오늘 이후 모든 창을 열지 않음

  오늘 이후 마음을 열지 않음




이은심 1995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2003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얏나무 아버지, 바닥의 권력이 있다.